하얀거탑을 보면서

하얀거탑.

짱입니다.

두말할거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모가지를 끊어서라도 보세요.

어제(2007년 3월  3일) 방영분인 17화의 반전 – 염동일이 이전 증언이 위증이었음을 고하고 진실을 밝히며 제발 솔직해지라고 장준혁에게 외치는 장면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반전이 나오기 전까지 고뇌하고 괴로워하다가 그때까지 모든 울분/죄책감 등을 모두 터뜨리는 감정의 반전이랄까 하는게 기막히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 그 장면 배경음악이 The great Sergeon이었습니다. 장준혁이 중요 고비를 맞을 때마다 나왔는데 이번 장면에서 만큼은 염동일이 자신을 속이고 떳떳한 의사가 아니었다는 자책에서 벗어나 진짜 위대한 외과의 – 기득권에서 말하는 ‘위대한’이 아니라 ‘진정한 의사’ 정도? – 로 거듭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더더군다나 이전까지 타인에게 의존적이었던 그의 태도가 바뀌어 정신적으로 자립해 위증죄에 대한 책임을 지며 진실을 밝힙니다. 초짜의사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최도형이나 하은혜 등에게 여러가지로 의지하기만 했던 모습에서 벗어났습니다.

염동일 역의 기태영씨의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역시 성공배우의 인큐베이터 벡터맨출신.

드라마 결말 이후 남은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될까요?

원고측(유족들)편을 들었던 사람들이 명인대학과 관련된 직장에 있기 힘들겠죠. 극내에서 국내 최고 병원인 명인대학과 관계되지 않은 의료계 직업이 몇개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겁니다. 명인대 눈 밖에 났으니 선택의 여지는 줄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는 있어도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은 하기 힘들겁니다.

명인대와 관련되지 않은 조직이라 해도 내부고발 경력을 알게되면 ‘우리 조직에 와서도 또 내부고발해서 조직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꺼려하겠죠. 명인대 정도 위상을 갖춘 병원 일을 관련 업종에서 모른다는건 말도 안되고요. 불이익이 너무 커요. 정의를 직접 실행한다는건요.

피고측 증언을 했던 사람은 위증죄를 치러야 할거고…

그렇다 하더라도 ‘하얀거탑’은 남겠죠.

사회 == 시스템을 어떻게 할 수 없는게 이런거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바뀌어도 시스템은 안 바뀐다는거. 정의로운 이는 외롭고 비열한 이는 여전히 득세하고…

배우들이 진짜 최고였습니다. …최도영 역은 캐릭터 자체가 심심하다보니 좀 그렇고, 주연인 김명민부터, 이주완 역의 이정길(사실 초반 주연이었다고 봄), 우용길 역의 김창완(음모를 꾸밀때의 표정, 그외 권모술수), 박건하 역 함승진, 함민승 역의 김용민…

이주완이란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굉장히 입체적이예요. 최도영이 재미없는 이유가 ‘시련을 겪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켜 정의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이잖아요? 그런데 이주완은 몇대째 의사를 해왔고 귀족적 습성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명인대 출신이 아님에도 외과 과장이 되었다는건 나름의 실력과 정치력이 있었다는거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모든면에서 제자에게 뒤쳐지고 어설퍼서 위기에 빠지고, 그걸 수습하느라 어쩔줄 몰라하면서 연신 안경을 매만지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합니다.

이주완과 장준혁은 10년간 상하관계 – 스승과 제자 -로 있었습니다. 이주완이 과장이 되기 전 혹은 되고 나서 장준혁은 이주완 라인에 있으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해왔고, 이주완이 퇴직하면서 장준혁에게 과장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순리였을 것입니다. 실력도 있을뿐더러 자신을 따르던 사람인걸요.

그런데 이게 실력에 대한 질투, 의사로서 생명을 대하는 자세보단 기술자의 태도가 보이는 것에 여러차례 지적(사실 이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주완의 태도로 볼 때 그냥 명분 중의 하나였을거예요), 퇴직후 자신의 앞길을 위해 장준혁을 후계 구도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나부터 드라마가 시작합니다.

이주완의 행동이 장준혁이 더 권력에 집착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죠. 실력이나 경력, 여러면에서 과장이 되는 것이 당연한데 실력이 아닌 요소로 인해 자신이 배제될 위기에 처하자 그 배신감과 절망감이 얼마나 극심했겠어요.

이주완은 체면을 중시해서 자기는 끝까지 착한 모습으로 남으려 하는 위선자입니다. 그 탓에 끝까지 모질지 못해 마무리가 어설프고요.

퇴직하고 내정되어있던 산재병원장 자리를 장준혁에 의해 잃고서야 딸을 돕거나, 부원장의 부추김에 세계외과학회장에게 장준혁을 음해하는 메일이나 보내고 있습니다. …’착한’ 인물이 될 가망이 안 보이네요.

그래도 자기 자리보존에 전전긍긍하는 소시민적 모습이 공감가고 감정이입이 되네요. 하얀거탑에 감정이입 안되는 캐릭터가 없지만 그 중에 이주완은 단순히 ‘악역이다’.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사극이나 현대정치극은 너무 길어서 늘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하얀거탑은 밀도높고 속도감 있는 전개를 해서 정말 좋네요. 원작이 좋았던 덕도 봤지만 드라마화도 기막히게 잘한거 같습니다.


게시됨

카테고리

작성자

태그: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